신용회복경험담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어요
- 최고관리자 20일 전 2025.05.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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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바쁘지만 단단했던 나의 삶
저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36세 간호사입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으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함께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었죠. 병원 일은 힘들지만 보람 있었고, 가정도 단단했습니다.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 대출금 등을 계산하며 촘촘하게 예산을 짜던 그때까지는,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더 넉넉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결국 저를 무너지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전개: 실패한 창업, 남은 것은 1억 1천만 원의 빚
3년 전, 남편과 함께 프랜차이즈 디저트 카페를 열었습니다. 주변에 창업으로 성공한 지인들을 보며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간호사로 야간근무도 하며 번 돈에, 은행 대출과 카드대출까지 합쳐 총 1억 1천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유동 인구는 줄었고, 본사에서 요구하는 비용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임대료, 인건비, 식자재 값이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게 됐습니다.
폐업 후 남은 건, 매달 수백만 원씩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이자, 그리고 무기력한 우리 부부였습니다. 남편도 수입이 일정치 않았고, 저 혼자 월급으로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 채무를 감당하는 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3. 위기: 아이의 한마디, 결국 결심하게 된 순간
하루는 아이가 저에게 “엄마는 왜 자꾸 울어?”라고 묻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밤마다 몰래 울었는데, 아이는 다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질문을 듣고 나니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퇴근 후 개인회생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도 안에서 재기를 시도하고 있더라고요. 며칠을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상담을 신청했고, 개인회생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4. 해결: 6개월의 준비, 3년의 변제계획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병원 일도 병행해야 했기에 틈틈이 소득증빙 자료, 가계부, 채무 내역서 등을 정리했습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절차 자체는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명확했습니다.
결국 저는 월 29만 원씩 3년간 변제하는 조건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이 돈으로 정말 되나?’ 싶었지만, 소득과 부양가족 수를 고려해 계산된 합리적인 금액이더라고요.
법원 출석은 긴장됐지만, 판사님의 “성실히 잘 변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내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내가 책임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걸 실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5. 결말: 다시 시작하는 삶, 더 단단해진 나
지금은 인가 후 1년째 변제 중입니다. 매달 29만 원씩 자동이체로 나가고 있고, 가계는 여전히 빠듯하지만 숨통은 트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서 당당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주말마다 직접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를 다니는 소소한 행복을 다시 찾고 있어요. 아직 먼 길이지만, 언젠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 컨설팅 간호사로도 활동하고 싶다는 작은 꿈이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처럼 가족과 생계를 지켜야 하는 현실 속에서 채무로 무너진 분들께 전하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닌, 책임지는 방식의 회복입니다.”
당당하게 제도를 이용하고, 다시 일어서는 길을 선택하세요. 저도 그렇게 다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